회고

기록 1일차를 보니, 당시에는 JavaScript의 자료형에 관해서 공부하고 있었다. 변수의 뜻을 말로써 풀어서 정리했던 걸 지금 와서 보니 제법 귀여운 맛이 있다. 열심히 하려는 의지가 보인다. 분명 내게 합격 통보를 알렸던 회사들은 절대 내 실력을 신뢰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지금 내가 기록 1일차를 보면서 드는 느낌을 그대로 받지 않았겠냐는 생각이 든다.

나는 똑똑한 사람은 아니다. 학창시절에 좋은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총명한 두뇌보다는 오래 앉아있을 수 있었던 엉덩이 힘이 큰 공헌을 했을 것이다. 꾸준함과 노력은 늘 내가 취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성취를 만들어내는 데 큰 역할을 해내 왔고, 그래서 나는 꾸준함의 힘을, 곰이 사람이 되는 순간들을 굳게 믿는다.

TIL(Today I Learned)을 100일 동안 기록했다. 사실 100일을 개근한 건 아니다. 도중에 해외여행, 면접 준비, 회사 적응 문제로 중단되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래도 100일을 가득 채웠다. 단순하게 매일매일 공부했던 걸 정리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쨌든 문서화도 공부할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니 말이다. 이런 걸 보면 어린아이들에게 방학숙제로 매일매일 빠짐없이 일기를 써야 하는 건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공부한 것들을 문서로 정리하게 되면 그날그날 회고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공부해야겠다는 의지에 가시적으로 보탬이 되어준다. 마치 챌린지를 하는 느낌이랄까. 도중에 기록한 날짜를 깨고 싶지 않아서 바쁜 날에도 꼭 한번 코드를 들여다본다. 게임할 때 일일퀘스트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은 (나도 일일퀘스트 보상에 목숨을 거는 편이다) 이 공부법이 분명 시너지를 더해줄 것이다.

처음 Wanted에서 Job description을 읽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신입사원을 뽑는다는데 도통 무슨 소린지 알 수 없는 전문용어로 되어있는 스킬들을 요구하는 회사들. 물론 공부하고 난 지금은 그것들이 오히려 우리 회사는 이 정도만을 원하니까 지원해보라는 뜻이였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그때는 꽤 충격이었다.

나는 당시 무식하게도 회사를 공무원, 공기업, 대기업, 중소기업 단위로 러프하게 분류하곤 했었는데(지금 생각해봐도 너무 러프하다) 막상 구직자가 되고 나서 공부를 해보니 이런 넓은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는 시간을 경험하게 되었다. 무언가에 잠식되어 있다가 정신이 번쩍 든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회고이다.

오늘은 취업을 하고 첫 월급을 받았다. 아직 배워야 할 것들 투성이고, 바쁜 나날들의 연속이지만 하루하루 기쁜 마음으로 업무에 임하고있다. 이전 직장과 업무량을 비교하는건 큰 의미가 없는 듯하다. 어쨌든 중요한 포인트는 나는 지금 꽤 멋지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직업을 찾았다는 것이다.

이 글은 다른 독자에게 기록은 생각보다 훨씬 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라고 약을 팔아보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비전공자로서 내 간절함을 보여줄 수 있는 수단은 매일매일 공부를 하고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기록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내 기준으로 이 전략은 다소 효과적이였다고 생각한다. 성장 과정을 기록하고 과거의 발자취를 들춰보는 일은 꽤 재미있고 뿌듯하다. 이제 막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글을 읽고 속는 셈 치고 지금 당장 시작해보길 권유한다. 반드시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